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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165

< 오뎅을 대하는 자세 > 오늘같이 추운 밤오뎅을 먹으려거든먼저 두 손을 배꼽 위에 가지런히 모으자.허리를 세우고찬 공기 속을 오르는 영혼의 궤적을 따라같은 속도로 시선을 이동해 보자.그네들 죽음에 관한 개별적인 사연은한데 뒤엉켜 조명받지 못했다. 포장마차 지붕에서 흩어지는 작은 입자들에 대하여눈인사로 배웅을 마쳤다면이번에는 지긋이 눈 내리깔고짙게 우러난 진심의 심연을 바라보자.진심은 비중이 큰 탓에 고스란히 가라앉는데이런 때에는 국자로 정중히 저어컵에 가득 떠 담으면 되는 것이다. 평생을 바다에서 살고도 바다에 물든 적이 없고우는 모습조차 목격된 적이 없으나창에 꿰인 몸 하나를 간장에 적시어 보면비로소 참았던 눈물이 짜다.그러니 국물을 들이켤 때에는작은 목숨이라 쉬이 생각 말고조심 또 조심하자.그네들 체온이 살았을 적보다 뜨겁다. 2013. 11. 20.
< 하산 > 거기에 있어라내려오면 안 된다산 아래 세상은 늘상 화가 나 있고밟히며 사는 이들조차너는 죽어도 싸다 말했다사람을 해친 것은 네가 아니고배추밭을 파헤친 것도 네가 아니나코가 닮았으니 너는 죽어야 한다 들어라도시에는 몸을 숨길만한 덤불이 없고사살을 지시한 이는하소연 듣는 말귀가 어둡다그의 소파는 지나치게 안락하고약자의 신음에 둔감하며너의 처지를 알만한 유일한 이는너를 쏘기로 되어 있다이유는 묻지 마라산 아래 세상에서 익숙한 일들을 2013. 11. 8.
< 영생의 비책 >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요새끼들 때문에 죽지 못해 사신다고 말이에요 이제는 제 차례입니다저도 어머니 때문에 죽지 못해 살겠습니다 그러면 빚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어머니는또 저 때문에 죽지 못해 사실 테지요? 이러다 보면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어때요, 어머니 2013. 10. 24.
< 그것이 올 때 > 빈 소주병에 수저 꽂고 흔들면짤그랑짤그랑 신이 왔다.시는 그렇게 왔다.신은 얼큰한 은총을 내렸고시는 뭉클한 의미를 내렸다.그러니까, 오후의 햇빛은 지나치게 서글펐으므로은행나무 잎으로 정제되어야 했는데어떤 빛은 잎을 통과했고어떤 빛은 신께로 돌아갔다.돌풍에 흔들린 잎사귀 사이로국수 다발 같은 빛줄기가욕지거리로 질척한 토사물 위에 쏟아졌을 때에는,빛이란 그런 식으로 낭비돼선 안 되는 것이었기에나는 흰자위가 붉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시린 눈을 감지 않았다.빛이 동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에도행인 몇이 건전한 눈빛을 쏘아빛의 교란을 시도하였으나해는 이미 서산 꼭대기 팔각정을 넘어섰고마지막 빛이 망막에 닿는 순간눈꺼풀이 닫혔고아, 제목이 떠올랐다. 2013.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