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165 < 사구 > 바람에 날리는 짐승의 갈기를 보았다 여행을 온 연인이 들풀 사이를 일렬종대로 걸었다 눈이 작은 여자는 아무것도 몰랐고 남자는 거꾸로 수를 셌다 자꾸만 모래 속으로 빠지는 여자의 좁은 뒤꿈치를 내려다보면서 왼쪽은 짝수, 오른쪽은 홀수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는 어렵지 않게 줄어들었고 이대로라면 남자의 이별선언은 방파제께에서 있을 것이었다 바람 거센 언덕 너머로 수평선이 떠올랐을 때 여자의 무방비한 눈꺼풀은 날아와 박히는 바늘을 막아내지 못했다 정말이지 풀들이 비열하게 누운 날 손쉽게 해결되는 날 2014. 9. 10. < 천국김밥 > 노부부가 천국으로 들어갔다한 줄 김밥을 서로의 입에 넣는 것으로두 사람의 오후는 구원받았다 김이 밥을 안은 것처럼빈약한 서로를 감싸며크게 터진 적 없이 한세상 살다 간다면그것으로 감사할 일 아니겠는가 '고생하지 말고 죽음은김밥의 단면처럼 단호히 오라' 해와 사랑은 길어져 가고김밥만이 짧아진 지금남은 하나를 놓고 거칠게 도지는한국의 미덕 계산은 내가 할 테니,문지기여 보게나저 한 쌍의 성자를 2014. 8. 29. < 관계의 기원 > 너의 지점은거기고 나의 지점은여기다 잇자우리에게 긴 선이 필요하다 뻗어라팔 2014. 8. 15. < 바람도 괜찮아 > 모래가 들어왔다눈이 멀겠다 이럴 때는 괜한 짓 말고한숨 잠이나 자자 일어나 눈뜨면또로록진주 한 알 떨어질 거다 2014. 8. 11.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4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