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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165

< 느림에 대하여 > 갈 사람은 가라.가고남은 우리는 천천히 가자.그렇게 우리는월요일이 서둘러 가도록길을 터줄 수 있어야 한다. 화요일점심 먹는 사이에주말은 서둘러 와라.너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 가령,가을을 이쯤에서 멈추자.지지 않는 코스모스와내려앉지 않는 잠자리와휘지 않는 억새와적당히 물든 산과 아, 겨울이 오면 끝이겠지만하는 식의. 2013. 10. 15.
< 블루스를 권하며 > 당신 마흔을 넘겼다면블루스를 권할게요조청처럼 차치고 끈적이는 감정을비비킹은 노래했지요'블루스 보이즈 튠'에서는식솔만큼이나 가늘고 위태로운 기타줄들이제 딱한 속사정을 끊어질 듯 나지막이그러나 넉넉히 읊조렸지요믿을 거라고는 쇠심줄 같은 고집이 전부인 당신 또한끊길 때 끊기더라도퉁기고 꼬집고 타고 놀며살다 갔으면 좋겠습니다통장 잔고만큼이나 텅 빈 당신 안에서공명은 더욱 클 테니까요 2013. 10. 8.
< 그래도 나는 살고 싶다 > 행성의 표피에소름처럼 돋아나파르르 떠는 유기체들 궤적이랄 것도 없는거의 제자리걸음을 제 딴에는몸부림이었다지? 2013. 10. 2.
< 낮술 > 너그러워지는 시간입니다늦었지만당신은 좋은 분이었을 거라 믿겠습니다본래 나쁜 사람이었다고는생각지 않겠습니다 자, 한 잔 주시고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를 빌려당신을 용서하고자 합니다 아직은 이른 시간창밖의 행인들 얼굴이 얼마나 온화한지,발치에 사선으로 떨어지는 두 시의 햇빛은또 얼마나 몽환적인지,비 그친 가을 하늘과식당 앞 아스팔트 웅덩이에 고인 빗물의 수면에서잘게 부서지는 빛에 관하여는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최후의 심판관이 되어 밥풀 흘린 일까지도 용서하고 싶은 시간입니다 생각이 술을 이기지 못하고 주제로부터 이탈한 사이느릿하게 몸 흔드는 길 건너 가로수의 관능을 보았습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자, 한 잔 받으시고 부러 당신을 몰라 뵌 시간.부디 나타나저를 용서하셔야겠습니다 아버지 2013.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