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술 >
너그러워지는 시간입니다
늦었지만
당신은 좋은 분이었을 거라 믿겠습니다
본래 나쁜 사람이었다고는
생각지 않겠습니다
자, 한 잔 주시고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당신을 용서하고자 합니다
아직은 이른 시간
창밖의 행인들 얼굴이 얼마나 온화한지,
발치에 사선으로 떨어지는 두 시의 햇빛은
또 얼마나 몽환적인지,
비 그친 가을 하늘과
식당 앞 아스팔트 웅덩이에 고인 빗물의 수면에서
잘게 부서지는 빛에 관하여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최후의 심판관이 되어
밥풀 흘린 일까지도 용서하고 싶은 시간입니다
생각이 술을 이기지 못하고 주제로부터 이탈한 사이
느릿하게 몸 흔드는 길 건너 가로수의 관능을 보았습니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자, 한 잔 받으시고
부러 당신을 몰라 뵌 시간.
부디 나타나
저를 용서하셔야겠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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