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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165

< 최 씨의 복권 > 걸려 봐걸리기만 해 봐주상복합 로열층을 몽땅 사들이고오전에만 다섯 끼니를 해치운 다음엘리베이터 대신 짐꾼 등에 업혀굳이 계단을 오르내릴 테다오후에는 외상 담배 거절한 인심 박한 편의점엘 찾아가운 나쁘게 교대한 아르바이트생 얼굴에고급담배 열댓 보루를 집어 던지고서는그 길로 잘 빠진 아우디를 뽑아 타고짱깨라며 멸시하던 고급 빌라 경비영감 앞을한 시간쯤 들락거려야지돌아오는 길엔 고급 바로 이름난어느 스카이라운지 창가에 자리를 잡고빌어먹을 길 건너 대학병원을 내려다보며값비싼 양주를 실신할 만큼 퍼마실 테다씨팔 석 달 전에, 가난이 어떻고 미래가 어떻고 하는일리 있는 말로칠 년이나 사귄 나를 용케 설득하고 떠나가서는그런대로 봐줄 만했던 얼굴을듣기로는 신분 상승 위해 리모델링 한답시고예금 털고 적금 깨서 돌팔이에게.. 2013. 6. 10.
< 계단 > 우리 분명히 하자나는 위 上너는 아래 下분하다 생각 마라툭 까놓고 너나 나나가운데 中 같은 건 추구한 적 없었다내가 그러했듯너 또한 위 上을 숭앙하고아래 下를 멸시했다위 上의 날은 반드시 도래하되다만 더디 올뿐이라 믿는 너에게얼마간의 치욕쯤은기꺼이 견딜만한 것이었기를 바라며그랬다면 일단 감사의 말을 전한다그날이 올는지요새는 귀신으로서도 알 턱이 없을 것이나까짓것, 너에게만은 온다 치고그렇더라도 우리 이것만은 분명히 해두자지금 나는 위 上너는 아래 下건투를 빈다 2013. 6. 8.
< 봄의 말미에서 > 단풍나무에서 떨어진 가을이어김없이 북쪽을 향해 엎드리던 작년꼭 일 년만 더 살기로진작에 구정날 차례상 물리며 다짐한바 있는 나는결국 끝이 나기는 하는가보다 싶어내심 준비를 마쳤더랬다 겨울은 왔고스스로 죽었다고 믿어지던 날대문을 박차고 들어온 그것이 글쎄'끝난 줄 알았느냐'며비비 꼬인 바람으로 하여금마당 가득 진달래를 뿌리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왠지 모를 좋기만 한 마음에오래도록 머물러주기만을 바라였으나,서둘러 떠나기로 결정된 것은 짐작건대 말 꽤나 한다는 이들의 앞다툰 찬사가여간 지긋지긋한 게 아니었던 게다 낙화 줍는 손목이만질 수 없이 더웁다 2013. 5. 16.
< 천식 > 정류장 아래로농로 따라 십여 분 멀리 뵈는 집 앞 화단에알록달록 몸뻬 차림으로엎드리듯 쪼그려 앉은 어머니 김을 매시나냉이꽃을 보시나 놀라게 하려고 잰걸음에 가 보니키가 작은 철쭉 진달래 서운하여 바라본 창문 틈새로새어나온 어머니 앓는 기척이반갑기만 한나는 나쁘다 2013.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