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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

< 사구 >

by 제페토* 2014. 9. 10.

< 사구 >

 

 

바람에 날리는
짐승의 갈기를 보았다
여행을 온 연인이 
들풀 사이를 일렬종대로 걸었다
눈이 작은 여자는 아무것도 몰랐고
남자는 거꾸로 수를 셌다
자꾸만 모래 속으로 빠지는 여자의 좁은 뒤꿈치를 내려다보면서
왼쪽은 짝수, 오른쪽은 홀수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는 어렵지 않게 줄어들었고
이대로라면 남자의 이별선언은
방파제께에서 있을 것이었다
바람 거센 언덕 너머로
수평선이 떠올랐을 때
여자의 무방비한 눈꺼풀은
날아와 박히는 바늘을 막아내지 못했다
정말이지 풀들이 비열하게 누운 날
손쉽게 해결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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