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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165

< 감기 > 생강차를 마시기로 해. 목도리를 두르기로 해.  숨을 크게 들이켜고목화 같은 입김을구름에 보태기로 해. 설설 끓는 방에 눕기로 해. 가슴 위에 올라 앉은 고양이를 내버려 두기로 해. 천연덕스러운 하품과조몰락거리는 앞발과그르렁대는 소리에 집중하기로 해. 행복하다.오늘 산책은 그만두기로 해. 2020. 11. 21.
< 대숲 > 대숲 >  연골을 없애고마디만을 남긴 너는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지조의 표상이 되었지만 강풍이 불 때면먼눈으로 사방을 더듬으며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느라잎이 찢어지고파도가 밀려오고비가 퍼부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면일찍이 꺾이어 피리가 되어 떠난 벗을 생각하며군락을 이룸도높아짐도 외로웠다. 그런 이유로 너는 텅 비었구나.살이 붙지 않는구나. 2020. 11. 14.
< 참된 자조 > 나는 욕망이 박약하고 소속 없이 쏘다녔지. 황량한 거리 윤곽이 흐릿한 골목으로 아침해를 피해 달아나곤 했어. 게워 올린 추억은 피죽처럼 소화됐고 딱히 가망이랄 것도 없이당장의 허기를 달래느라고타인의 꿈을 5초 후에 주워 먹었던 거야. 그러면 영락없이 배탈이 나서 긴 밤을 꼬박 지새워야 했지. 건강한 정신을 위해 달빛을 쏘여 보아도굳은 다짐 같은 것이 얼굴에 어리다 말더군. 신념과 실현 사이로 십여 년 추락하다 보면 구멍 난 어딘가에서 피가 새기 마련.혈류를 되돌릴 수 있을까? 아싸리 끝을 내줄까? 와우, 복되다. 복된 삶이로다. 2020. 10. 25.
< 1인 시위 > 땡볕 아래에서 외치는 저 사람목이 쉬었네.애간장 녹여 만든 진심을넉 달째 던지고 섰지만귓구멍이 좁고 심드렁한 행인의귓등만 맞히고 있으니딱하다 저 사람.해줄 수 있다면 마른 목을 맥주로 적셔부푼 핏대를 진정시키고손목 잡아 그늘에 앉힌 다음허울뿐인 정의는 없는 셈 치면 어떻겠냐고툭 치며 말해봐야지.여하간 빈속에 들이켜는 고량주처럼녹록잖은 날들만 집안 가득 쌓였을 테니김 형, 이러지 말고내가 봐 둔 괜찮은 술집에서해장국의 창조주가 부활을 명하는 늦은 아침까지같이 한번 죽어보는 거어때요. 2020.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