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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167

< 부끄러운 애도 > 연민이 봄볕 같아도분노가 불볕 같아도네가 묻힌 땅은 얼음장이다.세상에 영혼이란 것이 있다면또래의 입김에 섞이어눈 덮인 놀이터를 선회했을 테지만무슨 수를 써도 너는 돌아올 수 없다.안일한 자들이 멍든 손을 놓친 이후로더 이상 재잘거리지 않을 만큼너에게 침묵은 쉬운 일이 되었지만작은 점처럼 외로이 웅크린 마지막을 생각하면이제 와 눈이 붓도록 울어준들이름만이 서러워질 뿐이다.너의 죽음은 너무 이르고나쁜 습관처럼 우리는 면목이 없다. 2021. 1. 5.
< 탁발 > 길섶에 버려진사발 하나흰 눈꾹꾹 눌러 쌓이고마음을 주린이여와서 드소서성불하소서 2020. 12. 26.
< 어둠에서 빛으로 > 밤그늘 같은 느티나무 아래로 우리는 걸어 들어갔다. 무성한 나뭇잎을 비집고 이마에 내려앉는 햇살을 느끼며지금 필요한 것은약간의 휴식과동정과 마취라는 것을 알았다. 세상은 당분간 붕괴되지 않으며 미래는 어디로도 가지 않고 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가설을 믿기로 했다. 서로의 막막한 눈동자를 흘기기보다는 나란히 먼 곳을 응시하며외지고 어둡고 희박한 운명에행운이 가닿기를 소망하였다. 끝이라는 허구를가차 없이 지우면서, 지우면서 2020. 12. 17.
< 혼자가 아니다 > 너를 위해 모이겠다.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쪼개어하나는 너의 어깨, 하나는 너의 손목하나는 너의 시큰한 콧등에 올리겠다.무기력이 너를 베개 삼아 누우면결을 따라 가만히 빗질해주어라.마른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소리를흩어지게 두어라.상처를 걱정하지 마라.맨발로 뛰어도 다치지 않을 보드라운 해변이너에게도 있지 않으냐.체했을 뿐이다. 웅크린 등을 토닥이고창을 열어 바람을 들이겠다.너는 혼자가 아니다. 2020.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