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165 < 천성 > 빈병에 설탕을 부을라치면 희고 완만한 언덕이 될 뿐 뾰족이 높아질 새 없이 아래로 옆으로 흘러내린다. 이유는 입자에 있다. 알갱이 하나하나가 함께 높아지지 못할 바에는 함께 낮아지기로 하는 그 무구한 천성. 설탕은 차오를 테고 이들이 어떤 맛일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2018. 5. 25. < 그리움의 거리 > 그리운 것은 다들 멀리에 있다 강 건너 산 너머 바다 건너 하늘 너머 그리움의 크기가 거리와 무관하다면 어째서 가까운 것은 그리워 않는가 엎어지면 코 닿을 나는 어떠냐 2018. 5. 21. < 대설주의보 > 눈이 무릎까지 쌓인 밤인적 없는 곳에 이르러더 이상 눈치 볼 것 없음을 알게 되면그깟 세상 시름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키가 자라나 달빛을 닦는 수고가 좋았고고드름으로 목을 축여도 좋았다.가슴 또한 넓어져 발굽 달린 산짐승을 위해배춧잎 넉넉히 버려진 절름발이네 밭까지길을 내준 일도 좋았다.굴삭기에 옆구리를 다친 야산을 끌어안고1도쯤 체온을 올려준 다음볼품없는 털을 언제까지고 쓰다듬은 일은겨우내 자랑이 되었다. '저어기, 주인 모를 똥 위에 하얀 봉분이 생겨나그런대로 이름 없는 죽음들에 대한 예우도 갖추어졌고 하니흰둥아, 오늘은 고라니를 쫓지 말아라.' 이제 세상을 한없이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나는천변의 왜가리 죽음에 노하여 삵의 죄를 추궁하다가왜가리에게 당한 개구리와개구리에게 당한 메뚜기를 떠올.. 2018. 5. 14. < 차선책 > 견딜 수 없이 외로운 날에는밖으로 나가땅바닥에 두 손을 붙이자. 눈을 감고,대지로 하여금아무라도 연결되었음을믿기로 하자. 2018. 5. 9.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4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