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165 < 가득하다 > 나뭇잎이 땅에 닿기까지오롯이 지켜본 이가 몇이나 될까?우리는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말하는불량한 습성이 있다. 술 약속을 깨자.잠자코 가로수 아래에눈도 깜빡 말고 서서낙하의 전과정을 지켜보자. 잎이 가지에서 분리된 이 순간,비로소 나뭇잎은 낙엽으로 불리고우수가 깃든 소품이 되었다.머잖아 헤어지는 연인의 발밑에서눈물 대신 기념할만한 소릴 내 주리라. 짧은 활공 그리고 착지.그 사이에 우리는 인생을 살았다.새 생명이 태어났고, 누군가의 일생이 끝났다.삶에 생략은 없으며세상에 빈 것은 없다. 2018. 10. 23. < 발을 내놓는 잠버릇 > 몽유병자처럼 이불 밖을 배회하다새벽녘에 돌아온 발. 먼 나라 눈을 밟고 왔는지동상의 흔적이 있다. 초가을에 겨울을 만나러 갔다는 건서럽다는 증거. 내 잠버릇으로 인해 외로웠을 그를이불 속으로 불러들인다. 식은 뺨을 베갯잇에 비비며혼미해지는 동안에도 시린 발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다.나는 허깨비처럼 중얼거린다. 올가을도 잠깐이겠군. 2018. 10. 5. < 소풍을 위하여 > 구겨진 미간을 펴고느티나무 그늘에 누우면맨발을 타고 번져오는 온기에코뿔소라도 졸지 않을 수 없으리라. 소꿉장난 같은 도시락은악어처럼 해치우고꿈결같은 아이스크림은쇠처럼 녹이자. 초가을 하늘이 제 도리를 다하고전신의 무게를 느낄 수 없을 때,그때가 바로 절정의 순간임을의심치 말자. 사상 최고의 미소가천 리 밖에서도 목격되기를. 2018. 9. 27. < 가을이 오다 > 거짓말처럼 가을이 왔습니다.오죽했겠습니까마는,입간판이 넘어진 것은바람에 진심이 실린 까닭이겠지요.선풍기를 닦는 주인 얼굴이죽은 사람처럼 평온합니다.다들 한시름 놓았습니다.비가 서너 번 더 내리면기록적인 더위는 옛날 얘기처럼 시들해질 테고고열에 시달리던 밤이외려 그리울 날 있겠네요.가령 혹한의 성탄 전야에 부둥켜 안은 연인 곁으로 귀가하는홀몸의 질투처럼. 2018. 9. 20.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4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