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165 < 곶감 만들기 > 당신이 말라죽기를 바랐다. 목마름에 혼절하면서도천진한 나를 염려했겠지만,살아서 달콤함을 맛본 자는천국에 갈 수 없음을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눈 내리는 밤에길이 끊긴 산중에 처마 밑을 더듬는 침침한 손끝에잘 무른 살덩이 하나 닿기를 바라며가을 밤낮 가죽 벗긴 짓은생각만 해도 즐겁다. 2019. 11. 14. < 흐르다 > 사랑은 흐릅니다.더디 솟는 액체입니다.억지 부릴 수 없으며분비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사랑이 흘렀습니다.어머니에게서 나에게로아버지에게서 나에게로나는 몸이 젖은 줄도 모르다가새치를 뽑은 밤에 깨었습니다.후회가 가슴을 먹어치우도록내버려 두었습니다.뒤돌아 샅샅이길 위에 흘린 사랑을모르는 사람들과 나누어야겠습니다.기쁨은 흐릅니다.빠르게 솟는 액체입니다.두 눈이 흥건합니다. 2019. 10. 29. < 가을맞이 > 해변을 걷는 연인은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계절의 순환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어떻게든 여름 가고가을입니다. 나는 장롱에서 꺼낸 스웨터가느린 호흡으로 깨어나기를 기다려하늘을 보느라 차가워진 얼굴을그 품에 묻겠습니다. 얼굴이 스웨터를 통과하는 동안콧등을 때리는 작은 낙뢰를환영하겠습니다. 여름날의 아쉬움을잊겠습니다. 2019. 9. 29. < 다시 걷기 > 함께 밥을 먹읍시다.넉넉한 반주로상한 마음을 게워 내어속병을 치료합시다. 다시 걸어봅시다.작은 물병을 들고서멀리는 말고사거리까지. 해 볼 만했다면다음 사거리까지.그렇게 서너 번 너덧 번 가다 보면어렵다는 세상 종주를해낼 수 있을 테지요. 시공의 틈새로 먼 데 사는 당신을 봅니다.머리가 희고 주름이 깊은,비록 부자는 못되었으나눈매가 극락 같은 여든일곱 살.나는 당신이 해낼 줄 알았습니다. 2019. 8. 21.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4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