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 가는 길 >
가뭄이 질긴 시골길 열한 시
농로를 따라 늘어선 성긴 보안등 불빛에 어린 벼들 뒤척이면
미안해진 보안등은 눈치껏 점멸하다가
막차 타고 내려온 큰아들 어깨 위에
넉넉한 금빛 은총을 부어주었다
그러나 숙여진 얼굴은 캄캄하기만 했다
마을은 예전 그대로
씰그러진 길은 씰그러진 채로
내려앉은 지붕은 내려앉은 채로
마을 뒤편 엎드린 큰 짐승도
아직 떠나지를 않았더라
아버지의 멍청한 개는
어김없이 악을 써댔지만
녀석은 작년 여름의 폭염과 폭우에도
녹아내리지 않은 좋은 가죽을 가졌다
오늘 밤은 흐릴 거라더니
달의 역광에 나의 죄가 또렷해졌다
별수 없이 오늘도 큰 짐승처럼 웅크렸다가
내일 오후엔 오랜 작별을 고해야 할 듯싶다
아버지의 고뿌에 소주를 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