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과 영삼이와 개암나무 >
아버지가 재주껏 주먹을 휘두르던 밤
발작 같은 소란 속에서
나는 꽃을 떠올렸다
뜨거웠던 정오의 개울서 발가벗고 까불던
영삼이 놈을 떠올렸다
누나에게 손 붙들려 맨발로 도망쳐 나온
서사국민학교 정문 앞에서
저어기, 무심하게 불 켜지 않는
선생 사택 옆 개암나무를 떠올렸다
돌아오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고함에도
꽃과 영삼이와 개암나무는 돌아보지 않았다
아픈 삼차원으로부터의 탈출로
시야는 흐려지고 귀는 아득해졌으며
감각을 알 수 없는 다리는
부드러이 허공을 휘저어 나아갔다
그럴수록 꽃은 더 선명해졌고
영삼이는 더 크게 웃었고
개암은 더 고소해졌다
진공의 밤하늘엔
누구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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