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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

< 꽃과 영삼이와 개암나무 >

by 제페토* 2011. 12. 15.

< 꽃과 영삼이와 개암나무 >

 

 

아버지가 재주껏 주먹을 휘두르던 밤

발작 같은 소란 속에서

나는 꽃을 떠올렸다

뜨거웠던 정오의 개울서 발가벗고 까불던 

영삼이 놈을 떠올렸다

누나에게 손 붙들려 맨발로 도망쳐 나온

서사국민학교 정문 앞에서

저어기, 무심하게 불 켜지 않는 

선생 사택 옆 개암나무를 떠올렸다

 

돌아오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고함에도

꽃과 영삼이와 개암나무는 돌아보지 않았다

아픈 삼차원으로부터의 탈출로

시야는 흐려지고 귀는 아득해졌으며

감각을 알 수 없는 다리는

부드러이 허공을 휘저어 나아갔다

그럴수록 꽃은 더 선명해졌고

영삼이는 더 크게 웃었고

개암은 더 고소해졌다

진공의 밤하늘엔 

누구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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