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풍 소식 >
물드는 것이 어디 단풍뿐이랴
가을 산엔 제 몸보다 무거운 땔감을
형벌처럼 지고 내려오는 백발노인이 산다
형광색 옷차림의 당신은
산행 두어 시간 만에 마주친 그가
반갑기도 하겠거니와
못 본 척 지나치기도 뭣한 마음에
인심 좋게 길섶으로 비켜서서는
땀에 젖은 허연 얼굴을 훔치며
낭만의 계절이라는 둥
공기 좋은 곳에 사셔서 정정하시다는 둥
심지어 보잘것없을 올해 소출 걱정까지
말끝마다 선생님 선생님 붙여가며
서울 사람 특유의 유들유들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고 싶겠지만,
내년에도 단풍은 든다
가파른 토끼길로 접어든 노인은
겨우살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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