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의 연인 >
나는 당신이
상상력 풍부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귀 떨어지는 겨울날의 데이트
아침 먹은 지 여덟 시간째에
허기에 떠밀려 빵집 앞에 서겠지만
뒷주머니 속 뻔한 밑천에
출입문조차 잡지 못할 테지요
하여, 진열대의 케이크들 중
고급스런 놈들만을 가리켜
이것은 너무 달아 싫고
저것은 느끼하여 싫다 하는
마음에 없는 품평을 늘어놓고 돌아서서는
딱히 갈 곳 없을 우리는
가난하고 요령 없는 연인들이 그러하듯
플라스틱 테이블에 마주 앉아
오들오들 끼쳐오는 오한을
싱거운 농담으로 녹여보려 할 겁니다
그러나 말재주마저 변변치 못한 탓에
때워야 할 침묵만 켜켜이 쌓여가고
때마침 내리는 기적같은 눈에도
시무룩히 고개 떨굴 때쯤
이리저리 코트 주머니를 뒤진 당신은
꼭 쥔 주먹 내밀어
'빵'이라고 말하겠지요?
재치 없는 나는 말입니다,
주먹 안에 빵이 들었다는 것인지
주먹이 빵이라는 것인지
바보같은 눈만 껌뻑거리다가
부르튼 입술 아, 벌려 보이는 당신 시범에
그제야 따스하고 말랑거리는 그것에
오래도록 입 맞추게 될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나는
남은 모두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그 빵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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