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

< 성탄의 연인 >

by 제페토* 2011. 12. 9.

< 성탄의 연인 >

 

 

나는 당신이

상상력 풍부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귀 떨어지는 겨울날의 데이트

아침 먹은 지 여덟 시간째에

허기에 떠밀려 빵집 앞에 서겠지만

뒷주머니 속 뻔한 밑천에

출입문조차 잡지 못할 테지요

하여, 진열대의 케이크들 중

고급스런 놈들만을 가리켜

이것은 너무 달아 싫고

저것은 느끼하여 싫다 하는

마음에 없는 품평을 늘어놓고 돌아서서는

딱히 갈 곳 없을 우리는

가난하고 요령 없는 연인들이 그러하듯

플라스틱 테이블에 마주 앉아

오들오들 끼쳐오는 오한을

싱거운 농담으로 녹여보려 할 겁니다

그러나 말재주마저 변변치 못한 탓에

때워야 할 침묵만 켜켜이 쌓여가고

때마침 내리는 기적같은 눈에도

시무룩히 고개 떨굴 때쯤

이리저리 코트 주머니를 뒤진 당신은

꼭 쥔 주먹 내밀어

'빵'이라고 말하겠지요?

재치 없는 나는 말입니다,

주먹 안에 빵이 들었다는 것인지

주먹이 빵이라는 것인지

바보같은 눈만 껌뻑거리다가

부르튼 입술 아, 벌려 보이는 당신 시범에

그제야 따스하고 말랑거리는 그것에

오래도록 입 맞추게 될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나는

남은 모두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그 빵 맛있었습니다

'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노숙인 대피소 >  (0) 2011.12.19
< 꽃과 영삼이와 개암나무 >  (0) 2011.12.15
< 단풍 소식 >  (0) 2011.09.27
< 누이에게로 >  (0) 2011.08.30
< 어떤 날 >  (0) 2011.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