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날 >
너의 얼굴 잊혀간다는 것이
눈물 날 만큼 두려웠다
첫 키스 나누었던
카페 겨울나그네
초저녁이었지 아마
그날 밤 우리는 무얼 했던가
손잡고 지하상가를 걸었던가
어쨌든 그 시절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사랑도 그러하리라 믿었기에
길 위에 조금 흘린다 해도 아까울 리 없었다
이제는 아득해졌다
어떤 날엔 안주 없이 독한 술을 들이키고
꼴사나운 자해를 했는데
그러면 까맣게 잊었던 사소한 추억이
비질비질 상처로부터 흘렀다
그랬었지 하고 씁쓸한 미소로 잔을 들다가도
행여 잊혀질까 두려워
오른쪽 넙적다리뼈에 깊은 음각으로 새겼다
그러나 우리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는
가슴 치며 무너졌다
비틀거리며 자정의 천변에 불을 지르고
성당 문을 걷어차며 신을 모독했다
돌아오는 재개발 주택가 골목길
엄습하는 부끄러움에 뺨을 치고
희뿌연 허공에 부탁하듯 다짐했다
술 깨는 아침에는
지난밤 아무 일 없던 것으로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