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91 < 성탄의 연인 > 나는 당신이상상력 풍부한 사람이었으면좋겠습니다귀 떨어지는 겨울날의 데이트아침 먹은 지 여덟 시간째에허기에 떠밀려 빵집 앞에 서겠지만뒷주머니 속 뻔한 밑천에출입문조차 잡지 못할 테지요하여, 진열대의 케이크들 중고급스런 놈들만을 가리켜이것은 너무 달아 싫고저것은 느끼하여 싫다 하는마음에 없는 품평을 늘어놓고 돌아서서는딱히 갈 곳 없을 우리는가난하고 요령 없는 연인들이 그러하듯플라스틱 테이블에 마주 앉아오들오들 끼쳐오는 오한을싱거운 농담으로 녹여보려 할 겁니다그러나 말재주마저 변변치 못한 탓에때워야 할 침묵만 켜켜이 쌓여가고때마침 내리는 기적같은 눈에도시무룩히 고개 떨굴 때쯤이리저리 코트 주머니를 뒤진 당신은꼭 쥔 주먹 내밀어'빵'이라고 말하겠지요?재치 없는 나는 말입니다,주먹 안에 빵이 들었다는 것인지주먹이.. 2011. 12. 9. < 단풍 소식 > 물드는 것이 어디 단풍뿐이랴 가을 산엔 제 몸보다 무거운 땔감을형벌처럼 지고 내려오는 백발노인이 산다형광색 옷차림의 당신은산행 두어 시간 만에 마주친 그가반갑기도 하겠거니와못 본 척 지나치기도 뭣한 마음에인심 좋게 길섶으로 비켜서서는땀에 젖은 허연 얼굴을 훔치며낭만의 계절이라는 둥공기 좋은 곳에 사셔서 정정하시다는 둥심지어 보잘것없을 올해 소출 걱정까지말끝마다 선생님 선생님 붙여가며서울 사람 특유의 유들유들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고 싶겠지만,내년에도 단풍은 든다 가파른 토끼길로 접어든 노인은겨우살이 걱정이다 2011. 9. 27. < 누이에게로 > 산까지 오 분 거리잡혀선 안돼막아선 소방대원 아저씨는우리 누이 좋아하는 홍시 색깔 옷을 입었다덮쳐 온 그물에 코를 찢기고쇠몽둥이에 척추가 으스러지고깨진 거울 속 피칠갑 한 짐승을 보고서야비로소 자비 없는 세상임을 깨닫는다사냥개 떨쳐내며 단내 나게 달린다산 입구엔 어제 없던 재개발 펜스당황한 둔부에 꽂히는 묵직한 마취용수철 같던 야성은 콘크리트 바닥에 전복되고흐믈해진 다리는 허공을 달음질쳐보지만부러진 발굽에선 절망만이 솟구치고콧구멍은 그럼에도 삶의 의지 씩씩 뿜어내는데아가리는 누이를 목놓아 부르는데 글렀네 작년에 엄마를 쏜 늙은 엽사가방아쇠에 검지를 건다 2011. 8. 30. < 어떤 날 > 너의 얼굴 잊혀간다는 것이눈물 날 만큼 두려웠다 첫 키스 나누었던카페 겨울나그네초저녁이었지 아마그날 밤 우리는 무얼 했던가손잡고 지하상가를 걸었던가어쨌든 그 시절엔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사랑도 그러하리라 믿었기에길 위에 조금 흘린다 해도 아까울 리 없었다 이제는 아득해졌다어떤 날엔 안주 없이 독한 술을 들이키고꼴사나운 자해를 했는데그러면 까맣게 잊었던 사소한 추억이비질비질 상처로부터 흘렀다그랬었지 하고 씁쓸한 미소로 잔을 들다가도행여 잊혀질까 두려워오른쪽 넙적다리뼈에 깊은 음각으로 새겼다그러나 우리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는가슴 치며 무너졌다비틀거리며 자정의 천변에 불을 지르고성당 문을 걷어차며 신을 모독했다 돌아오는 재개발 주택가 골목길엄습하는 부끄러움에 뺨을 치고희뿌연 허공에 부탁하듯 다짐했다술 깨는 아.. 2011. 8. 11. 이전 1 ··· 42 43 44 45 46 47 4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