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밭에서 >
시골집 나지막한 뒷산에
여린 잎이 풍성한 나뭇가지들이
흡사 수초처럼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아직 태풍은커녕 장마조차 겪지 않은
어린 것이었음에도
소리로는 제법
쓸쓸한 가을을 흉내 내고 있었습니다
표현할 방법도 없고
사전에도 없는 그 소리를
아아, 나는요
삽질을 멈추고
새 울음을 멈추고
우주를 멈추고
비석처럼 가만히 듣고 섰다가,
느낄 수 있음에 앞서
들을 수 있음을 먼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허락 없이 해가 산을 넘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