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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

< 익숙한 것들에게 >

by 제페토* 2013. 4. 10.

 

< 익숙한 것들에게 >

 

 

사방에 어둠이 고이더니

금세 발목까지 차올랐네요

황금빛으로 과열됐던 아파트 서쪽 벽이

감귤빛으로 가라앉다가

낮은 채도로 사그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이제 나도 가라앉을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는 꼼짝없이 잠영하다가

눈 떠지면

언제나처럼 안부 인사를 건넬 겁니다

벵골고무나무야 안녕

장미허브야 안녕

고물컴퓨터야 안녕

커피포트야 안녕

대답을 재촉하진 않을 생각이에요

어둠이 마르지 않은 서쪽 벽의 여운은

아직 푸르스름하고 졸리고

축축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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