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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

< 참나무숲에 사랑이 왔었네 >

by 제페토* 2012. 9. 28.

< 참나무숲에 사랑이 왔었네 >

 

 

 

믿지 않았으나

참나무숲은 외롭다 외롭다 했다

비 갠 날에도 어두운 낯빛으로 누군가의 위로만을 바라다가

막상 작은 다람쥐라도 뺨을 비빌라치면 까닭 모를 신경질을 부리곤 했다

몇 달이 멀다 하고 옷 갈아입는 변덕도 그렇거니와

아마도 영영 숲을 떠날 수 없으리라는 처지 비관 때문이었으리라

 

기록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날도

옥죄듯 타고 오르는 칡의 추근거림에 한참을 칭얼댔는데,

정오를 넘긴 무렵엔가 숲에 전에 없던 소란이 일었다

그랬다. 해마다 지중해를 떠돌다 히말라야를 넘고 사막을 가로질러

모래를 털고 제주도로 향했던 그 바람이 

휴식을 위해 내려앉은 것이다

 

오랜 여행으로 지친 그에게, 그러나 숲은 배려를 몰랐다

타지도 않는 간지럼에 자지러지는가 하면 부끄럼도 없이 잎사귀 허연 밑을 들추어 보였는데,

맹세하건대 그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까칠한 서로의 가지를 비벼대며 원만한 성격인 양 과장된 웃음을 흘릴 때에는

산전수전 겪은 그로서는 뻔한 수작임을 알기에 

떠날 채비만을 총총 서둘렀다

 

당황한 숲이 뜬금없는 눈물을 쏟으며 

묻지도 않은 제 조울증의 책임을

사십여 년 전 홀로 뿌리내린 아까시나무의 억척에 뒤집어씌우자

혐오를 느낀 바람은 면전에 낙엽을 뿌리며 떠났고

미동조차 없는 숲은 

비로소 외로운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이제 참나무숲의 외로움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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