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 >
강화도의 중력은 유별났으므로
막차가 김포를 지나기 전부터
머리를 천 근 만 근 무겁게 했다.
숙취 탓인지는 몰라도
통진을 지날 즈음엔
가벼운 욕설조차 발밑에 나동그라졌다.
검문소 지나 다리를 건넌 직후에는
쇠구슬 같은 밤공기에 사레가 들렸다.
논을 가로지르는 고라니 형편도
살얼음 위로 곤두박질쳤다.
그래, 사실대로 실토하자.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했노라고.
나는 달표면에 첫발을 딛는 우주인처럼
커다란 도약으로 정류장에 내려서다
발목이 부러질 뻔했다.
그렇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건 무거운 일이다.
하여 가벼워질 요량으로 숨을 훅훅 뱉으며 걷는데,
저녁 차려 놓으랴 물으시는 어머니 목소리만이
전화기 너머에서 홀로 가벼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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