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정과 연민 >
고장 난 자전거를 부축하여 가는 길에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것을 연민했다.
그를 닮은 주인은 칠 년 전에 죽었고
뼈만 앙상한 그의 거처는 지붕조차 없었나 보다.
그래, 가서 너를 위한 지붕을 만들어 주마.
물릴 만큼 기름을 먹여주마, 하며
기쁨을 아는 허수아비 앞에 섰을 때
이제 겨우 통성명을 마친 참새가 아버지처럼 달아났다.
내게 관계란 늘 그런 식이었지만
자전거가 삐걱이며 눈치 주었을 때
누구나 떠나야 할 운명임을 받아들였다.
그래, 우리에게는 목적지가 있지. 어디로든 떠나야 하지.
보라, 개천으로 떠내려가는 구름의 순응을.
여름은 진작에 떠났고, 자전거를 따라 들어선 농가에서
울다 만 노파가 저녁을 권했다.
나는 몹시 허기졌을뿐더러
그녀가 내 어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있는 힘껏 밥을 비웠다. 엄마라고 불러보았다.
그녀가 남은 울음을 마무리 짓는 동안
어떤 서글픈 예감에 몸서리를 치며
처음으로 사람 같지 않은 나를 연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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