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려 >
그는 쓸쓸함을 몰고 오는 사람이다.
한 무리 낙엽을 거느리는 사람이다.
그가 여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늘이 깊은 플라타너스 덕분이었다.
추위와도 친분이 깊은 그는
짧은 바짓단 밑으로
일찍부터 겨울을 불러들였다.
서리가 엉긴 머리칼을 쓸어넘길 때마다
겨울이 깊어졌다.
담배가 떨어지고부터는
버석거리는 손에
그을음이 짙어 갔다.
하느님의 휴가가 길어지고 있을 때였다.
그의 사인은 불분명하다.
다만 길 위에 눕는 것은 무엇이든
해석의 여지없이 소각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동무를 잃은 낙엽들이 우물쭈물 흩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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