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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

< 퇴근 >

by 제페토* 2011. 4. 12.

< 퇴근 >

 

 

시내 대형 마트에서 

파견직 판매원으로 

악다구니 쓰듯 삼 년을 일했다

가난한 삶이 주는 불편함

미래의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나아지지 않는 십 년 살림살이에

발이 부르터라 달음질쳐보지만

목표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꿈은

그래서 악몽이 된지 오래건만

미련 또한 많아서

살아야겠구나

움켜쥐어야겠구나

하지만 모질지 못한 남편

동창 년 신랑처럼 야물딱지면 좀 좋아

남의 눈에 눈물이

내 새끼 눈에 웃음이잖아

 

시장경제다

자본주의다

좋다, 백만 원이라도 받겠다

문득 바닥 보인 쌀통이 생각났다

큰애 병원비도 빠듯한데

부실한 밥상 군말 없이 받던 막내 생각에 

그놈의 코가 또다시 시큰해진다 

 

밤 열두시,

아쉬운 대로 십킬로짜리 최저가 쌀을 골라

비정규직 캐셔에게 계산을 마치고

비정규직 동료에게 잘 가라 손 흔들고

비정규직 운전수의 마을버스를 타고

비정규직 작가의 라디오를 듣고

비정규직 경비에게 인사를 하고

비정규직이 만들었을 엘리베이터에서

오늘은 이혼 얘기 꺼내지 말자고 단단히 다짐한다

큰애가 좋아하는 피자집 전단지가 

낡은 현관문 틈에 아프게 끼어 있다

이것은 또 누가 만들었다는 말인가

문이 열리자 어지러진 방에 뒹굴던 막내가 

엄마, 하고 달려와 안긴다

그래, 

너는 비정규직의 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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