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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가는 대로, 함부로

< 벚꽃 신파 >

by 제페토* 2025. 4. 13.

< 벚꽃 신파 >
 
 
오래되었습니다
당신 이름을 가슴에 담아두었습니다
가슴을 열면 바로 찾을 수 있도록
정면에 걸어두었지요
이따금 꺼내어 소리 없이 불러보는 건
쑥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목이 쉬는 일이었습니다
겨울에는 눈을 쓸어주었고요
봄에는 꽃잎을 털어주었고요
여름에는 빗물을 닦아주었고요
가을밤에 꼭 한 번 서럽게 울었습니다
신파는 아니었습니다만
낙엽은 그리도 붉어야 했는지요
나무는 그리도 야위어야 했는지요
보드라운 소매로 닦아주면
이름은 날카롭게 빛났습니다
안타까운 건
이름을 담고 사는 한
가슴이 아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물어 딱지라도 질라치면
견디지 못하고 다시 열어보는
우를 범하였으니까요
피가 흐를밖에요
가슴을 열고 들여다보는 건
그래서 아픈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오래된들
단단히 숨긴들
세상에는 잊힐 수 없는 것이 있더군요
별과 같은 이름은요
술에 취해 휘청일 때마다
외로운 폐부를 찌르기 때문이죠
누군가를 가슴에 담아두는 건
그러므로 위험한 행위입니다만
오늘도 술김에 가슴을 열고 말았습니다
자해나 다름없는 짓을
이름을 불러보는 짓을

이름을 두고 간 그대여
무심한 이여
오늘 밤도 안녕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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